이 기사는 20살 사회체험 프로그램 ‘열아홉, 스물’의 일환으로 기획된 기사입니다. 갓 스무살이 된 청년들이 바라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떤 모습일까요? 스무살 청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취재한 기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알고, 해결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그리고 세상의 변화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었던 피해를 증언하는 고 김학순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었던 피해를 증언하는 고 김학순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표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90년, 일본은 일본군이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 발표를 들은 김학순 할머니께서는 용기를 내서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증언을 하셨습니다. 이로써 ‘위안부’ 문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헛소문이 아닌 역사적 진실로 변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게다가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상에 소리칠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정신대 피해 신고전화’를 개설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증언은 국내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위안부’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도와주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은 미야자와 기이치(당시 일본 총리)의 우리나라 방문과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최초의 수요시위가 열리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처음 시작되어, 지금은 현재 연 인원 8만여명이 참석하는 세계 최장기 집회가 되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무리하게 많은 보상금도, 형식적인 사과도 아닙니다. 할머니들은 일본의 공식적이고 진심어린 사과와 강제연행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한 배상, 무엇보다도 다시는 이런 끔찍한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참된 역사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기있는 고백 후의 할머니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이유로 자신을 숨기며 지내셨던 할머니들의 모습은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 할머니들은 수요시위에 참석하시고 초청강연이나 역사 수업에서 진실을 증언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시민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할머니들과 비슷한 고통을 당한 미국 기지촌의 성매매 피해자들에게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주며 격려해 주십니다. 할머니들의 이런 활발한 활동으로, 2007년에는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12월 유럽 의회에서 역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이를 공식 사죄하는 고노 총리.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이를 공식 사죄하는 고노 총리.

이렇게 우리 모두가 노력하는 동안 일본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을까요? 물론, 일본은 고노담화를 발표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고노담화의 전문을 잘 살펴보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주요 책임은 ‘위안부’를 이용해 일본군을 접대한 민간 업자들에게 떠넘기며, 군은 관여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진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방법을 통해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에 대한 방침이 전혀 없다는 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라 불리게 된 계기

우리는 왜 할머니들을 향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1990년대 초기에 일본은 할머니들을 ‘종군 위안부’라 불렀습니다. 이는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군인들을 따라다니며 위안을 주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1993년 10월에는, 도쿄 ‘제2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위안부’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실제로 그 여성들이 위안부 였던 것이 아니라 일본군에 의해, 일본군 문서에 의해 위안부라 불렸던 것임으로 작은 따옴표를 함께 붙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범죄의 주체인 일본군을 앞에 붙임으로써 강제성과 국가차원에서 벌어진 범죄임을 표현해 줍니다. 이외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지칭하는 말을 참 많이 변화했습니다. 말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할머니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스무살, 역사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자료를 조사하고, 대학생 농성현장에 찾아가고, 소녀상을 보며 정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의 위치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실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진실과 역사를 바로잡을 책임감을 가진 청소년이자 시민입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아직 우리는 먼 길을 가야합니다. 하지만. ‘백짓장도 만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험하고 먼 길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힘을 보태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언제가 길의 끝에 도착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과거의 우리 역사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및 글: 최선호 (동국대학교 16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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