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살 사회체험 프로그램 ‘열아홉, 스물’의 일환으로 기획된 기사입니다. 갓 스무살이 된 청년들이 바라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떤 모습일까요? 스무살 청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취재한 기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초의 스무살들은 매우 바쁩니다. 대학 OT도 가야하고 대입을 준비하느라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야 하기에, 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기에. 하지만 이런 바쁜 와중에 소녀상과 그 앞에서 농성하는 대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낸 스무살들도 있었습니다.

2월 12일 오후 7시, 소녀상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몇몇 뜻있는 분들이 농성하는 대학생들을 위해 밥차를 끌고 와 저녁밥을 손수 지어주셨습니다. 이 날 식사는 고려대 86학번 민주동우회 회원들이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식사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식사가 끝나 정리를 하려던 찰나에 방문해 갑작스러웠지만 사람들은 “저녁 식사 하셨냐”며 따뜻하게 우리를 웃으며 맞아줬습니다. 각자 이것저것 먹고 온 상태라 그렇게 배고프진 않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거절할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먹은 밥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원래 이 날에는 촛불이 예정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즉석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소녀상 앞에는 약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농성하는 대학생 중에는 취재하러 온 기자들과 스무살 동갑내기인 학생들도 꽤 있었다.

고려대 새내기인 이재훈 학생은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하다가 직접 행동하는 자리는 오늘이 처음”이라면서 “미리배움터에서 ‘행동성이 결여된 지식인은 거부한다’는 말을 듣고 저도 행동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라고 참가 취지를 밝혔습니다. 이곳을 찾은 새내기들은 모두 처음으로 행동하는 것이었지만 표정은 매우 밝아보였습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자 부슬비가 살짝 내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생들이 왜 이곳에서 농성을 시작했는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기사를 쓰고 있을 무렵, 대학생들의 농성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학교 안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학우들과 함께 행동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63일간의 농성은 끝났지만 그들의 농성이 어땠는지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성희연 (이화여대 10학번, 청년독립군 대표)
박예지 (고려대 15학번, 고려대 평화나비 및 청년하다에서 활동)
이왕진 (고려대 10학번, 고려대 평화나비)

 

정희선 : 처음에 한일합의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예지 : 처음에 한일합의가 언론에서 되게 호의적으로 보도되었어요. 그래서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평화나비가 이제 없어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전말을 보니까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희연 : 저도 비슷해요. 처음에 언론이 너무 좋게 보도를 해서 해결된 건가 싶었는데 다시 보니까 말이 안되는 협상이었어요. 국민들이 전부 언론에 현혹되서 제대로 모르고 있더라고요. 이 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대학생 단체들이 함께 ‘한일협정 파기를 위한 대학생 대책위원회’가 만들었습니다.
최선호 : 농성을 오랫동안 하시면서 힘들었던 일이나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성희연 : 처음에 경찰이 침낭이나 이불 들여오는 걸 막았어요. 저는 그 때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거든요. 그 때도 비가 와서 비닐 쳐놓고 밖에 상황을 보고 있었는데 애들이 이불을 들고 뛰는 거예요. 그 뒤에 경찰들이 쫓아갔어요.

 박예지 : 평화나비에서 원래 워크샵을 준비하면서 장소 대여하고 그랬던 돈이 있었어요. 워크샵이 취소가 되면서 돈이 생겨서 숙박비로 침낭을 샀어요. 그런데 또 뺏길 것 같은 거죠. 그래서 여기 뒤에 작은 공원이 있어요. 거기에 침낭 30개를 쌓아놓고 애들이 비밀스럽게 모였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면 빼앗기지 않고 잘 들고 갈 수 있을까’해서 가방에 하나씩 넣고 계속 왔다갔다하고 패딩 일부러 벗어서 패딩 두 개 들고 가는 척하면서 농성장에 들여보내기도 하고. 그렇게 모인 침낭으로 이렇게 보내고 있는 거죠. 지금은 이제 경찰이 뭐라 안해요.

성희연 : 지금은 많은 시민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이걸 막으니까 일본순사냐고 반응을 하시니까 경찰도 이제는 처음처럼 막고 그러지 않아요. 적당히 타협하면서 봐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고 있죠.

이왕진 : 침낭이나 텐트 반입할 때 의경과 대치상황이 조금 있었어요. 의경 중에 한 명이 따로 나와있길래 제가 말을 걸었어요. “아저씨, 몇 살이에요?”하고. 전역 얼마나 남았나 얘기하면서. 그렇게 계속 얘기하다 보니까 동갑이더라고요. 그래서 “야, 친구 먹자”해서 친구 먹고. 저쪽에선 대치하는데 이 쪽에선 농담하고. 그리고 한파도 한 번 있었잖아요. 그때 밥차가 왔었는데 김치가 샤베트가 됐어요. 그래서 사람이 살 수 있었나 싶었는데 저는 먼저 나왔지만, 농성장 계속 있었던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서 일어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농성한 친구들이 고마웠어요.

박예지 : 저는 ‘중3 피자사건’(페이스북 링크)도 기억에 남아요. 그 전화통화를 제가 했거든요. 그 날이 고려대가 농성장을 지키는 날이었는데 낮에 피자가 뜬금없이 배달이 온 거에요. 어디서 보낸 거냐고 배달원에게 물었더니 “말해줄 수 없다”고 해서 제가 계속 물어보니까 배달원이 영수증을 줬어요. 영수증을 받았는데 번호보다 먼저 눈에 띈 게 배송지였어요. 주소가 보통은 무슨 구, 무슨 동, 몇 번지 이렇게 되어 있어야 하는데 ‘소녀상 옆 대학생들’. 이렇게 되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해 봤는데 중학교 3학년인 거죠. 그래서 “내가 중3한테 피자를 얻어먹다니”하고 충격받았어요.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되게 기분이 좋고 그렇더라고요.

 

 정희선 :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떤 태도를 취해주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박예지 : 정부의 태도는 약간 인간성을 상실한 듯 해요. 국가에서 한 번도 처리를 한 적도,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피해자가 나서서 시작된 운동이잖아요. 그런데 이번 한일합의는 피해자 없이 자기들이 해결을 해버린 거에요. 그래서 이걸 보면서 정말 이 정권은 상식을 떠나서 인간성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성희연 : 일본이 협상 이후에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는 막말과 망언 행보를 이어가고 있잖아요. 그런 발언 이후에 아무 대응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다른 나라에게 잡혀있는 정부를 보며 “내가 저 정부를 내 대표로 인정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왕진 :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는 말은 정부 입장에선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합의 이전에 했던 말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합의를 다해놓고 “자, 이렇게 해놨으니 대국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 이건 순서가 잘못 됐다고 할 수 있죠.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희선 : 농성을 하면서 부모님들의 반대가 많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박예지 : 저희 부모님께선 많이 반대하죠. 처음에 농성을 한 게 TV 뉴스에 방송됐는데 그걸 부모님이 보신 거죠. 그 때 저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알게 되셨어요. 저는 평소에도 여러 활동 하면서 논쟁들이 조금 많았는데 이번 ‘위안부’ 사건 같은 경우는 누가 봐도 한일합의는 옳지 않은 것이고 지금 대학생들이 하고 있는 농성이 너무나 옳은 것임을 알고 계시니까 오히려 크게 뭐라고 안하시고 “집에 일찍 들어가라” 이 정도로만 말씀하시더라고요.

성희연 : 저희가 이제 농성을 해야 하니까 외박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나 오늘 집에 못 들어가”라고 말씀드렸는데 “왜?” 이러셔서 “오늘 농성 우리가 해야 해”하니까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경제나 먹고 사는 문제지 그런 역사라던지 이념이 아닌데 너가 하고 있는 것은 하등 쓸모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빠랑 조금 싸웠어요. 물론 경제만큼 사회 구조가 잘못 됐다는 중요한 문제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부모님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가 대학생들의 힘으로 조금씩 바뀌면 부모님의 생각도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박예지 :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농성을 동의하는 부모님이라도 “그래 좋은 일 한다. 근데 꼭 네가 해야 하니? 물론 필요한 일인데 그게 너여야 하니?” 이런 말씀도 하시는데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들이 없으면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을 거고. 생각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에 지지도 많이 받고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열심히 이겨낼 거에요.

 

최선호 : 독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이나 당부의 말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성희연 : 지금 그 북핵이나 싸드, 개성공단 등의 문제 때문에 ‘위안부’ 문제가 묻히고 있잖아요? 다른 문제들 역시 중요한 문제인데 ‘위안부’ 문제가 또 흐지부지 될 것 같은 걱정이 크더라고요. 기사를 보시는 분들께서 ‘위안부’ 문제는 전혀 해결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악화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한 번이라도 여기 와보시고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예지 : 저도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궁금한 게 있으면 뉴스로 찾아보는 것도 좋은데 농성장이 생소한 광경일 수 있지만 사실 이걸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언니, 오빠, 형, 누나들 이거든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거나 집에 있는 형제, 자매같은 대학생들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궁금하거나 그런 게 있다면 이런 언니, 오빠들, 형, 누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와서 한 번씩 보고 가기도 하고, 같이 피자도 먹고 그러면서 관심을 계속 가져주면 좋을 것 같아요.

 

취재 및 인터뷰: 정희선 (명지대학교 16학번), 최선호 (동국대학교 16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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